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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書:使徒の働き189-11 

使徒パウロが続けてコリントに滞在しながら福音伝道をしました。もちろん、彼らに対する迫害も強くなりました。その為にパウロは弱く、恐れおののいていました(Ⅰコリント23)。そのときに主なる神様が幻によってパウロに「恐れないで、語り続けなさい。黙ってはいけない」(9節)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主の慰めです。主はまた恐れてはいけない理由を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10節)。その一は、主がともにいて守ってくださるから。その二は、コリントに主の選ばれた民が沢山いるからであります。

 

使徒パウロも人間であるが故に弱いです。いくら信仰が強いと言っても、時々恐れを感じることは当然なことです。しかし、恐れに縛られ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恐れを乗り越えて大胆さを持つべきです。そのためには使徒パウロに与えられた約束のみことばを思い出しましょう。すなわち、主なる神様がともにいて守ってくださることを信じましょう(詩篇271-3)。また、主の選ばれた民を呼び集める使命を与えてくださったことを覚えて、その働きに邁進しましょう。使命者はその使命を全うするまでは、死ぬ自由もありません。

 

恐れの原因はどこから来るでしょうか。それは恐れる考えからです。それでは、その考えはどこから来るでしょうか。それは恐れるようにさせるものを見て、聞く、すなわち、視角と聴覚を通して来ました。それが私たちの体の神経細胞に記憶されて、その記憶が自分の無意識を支配するようになるからです。ですから、私たちは日常生活の中でも恐れさせるようなものを見たり、聞いたりするのを避けるべきです。それで、聖書は信仰の創始者であり、完成者であるイエス様から目を離さないでいなさい(へブル122)、また、イエスのことを考えなさい(へブル31)と勧めています。

 

同じ環境の中にいても、何を見るかによって反応は異なります。同じカナンの約束の地を見たイスラエルの偵察隊12名がその例です。10人は敵の強さを見て恐れおののいていましたが(民数記1331-33)、二人は主がともにいてくださることを見て強く雄雄しく大胆に進もうとしました(民数記149)。そして、ゴリヤテの登場を見てイスラエルのすべての軍人は恐れて身を隠しました(Ⅰサムエル1723-24)。でもダビデは勇気を持って戦いに臨んで打ち勝ちました。はゴリヤテではない、主を見たからです(Ⅰサムエル1745,49)。

 

そのような例は新約聖書にもあります。イエス様だけを見ていたペテロが海の上を歩くことができました。しかし、彼の視線が風を見るときには、恐れで海に溺れました(マタイ1424-33)。使徒パウロも主なる神様を見て、そのみことばを信じたときに大胆に福音伝道の使命を尽くすことができました(11節)。今、恐れていますか。その視線がイエス様から遠く離れて、その耳が他の音に傾いているからです。再び目と耳をイエス様に固定しましょう。大胆な信仰の回復が起こりますでしょう。

アーメン。

 

사도바울 일행이 계속해서 고린도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들을 방해하며 핍박하는 세력들은 여전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도바울은 약해지고 두려워 떨었습니다(고전2:3).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9)”고 위로해주셨습니다. 또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셨습니다(10). 첫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해롭게 할 자가 없도록 지키시므로, 둘째는 고린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인간이기에 육체의 약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하다 해도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도리어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에게 주신 약속을 떠올려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키심을 믿어야 합니다(27:1-3). 또한 영혼구원의 사명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그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죽을 자유도 없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두려움의 생각에 의해서 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두려운 것을 보고 듣는 시각과 청각에 의해서 옵니다. 그것이 우리 몸의 신경세포에 기억되고 그 기억이 무의식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두려운 것을 보고 듣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12:2) 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3:1)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똑 같은 환경에 있어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똑 같은 가나안 약속의 땅을 본 이스라엘 정탐꾼 12명이 그 예입니다. 열명은 적의 강함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고(13:31-33), 두 명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14:9). 그리고 골리앗의 등장을 보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수들은 두려워 숨었고(삼상17:23-24), 다윗은 용기 있게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아닌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삼상17:45,49).

 

그런 예는 신약성경에도 있습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본 베드로가 담대하게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바람을 향할 때 두려워 바다에 빠졌습니다(14:24-33). 사도바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믿을 때 담대하게 복음전도의 사명을 다할 수가 있었습니다(11). 지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고 그 귀가 다른 소리에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눈과 귀를 예수님께 고정하십시오. 담대함이 회복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