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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을 보냈다. 가능하면 기도원에 가서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하며 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교회의 사역들이 많아서 여의치 않았다. 마침 신학교에서 한주간 조직신학을 강의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닌데 조직신학 중에도 기독론을 다루며 예수님께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살펴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을 수가 있었다. 고난주간과 신학교 강의가 조화가 된 것이다. 또 새벽기도시간에는 매일 성경을 한 장 읽고 강해설교한다. 마침 금요일에는 마가복음14장을 읽을 차례였었다. 그 내용이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부분이었다. 억지로 계획을 잡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고난주간과 성경말씀이 연결된 것이다.

 

 

 

수년 전에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적이 기억난다. 마침 그때가 고난주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리핀에서 본 텔레비전의 장면이 선명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난주간을 맞아 십자가에 못박히는 체험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화면이었다. 예수님처럼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혀서 피 흘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올 것이 틀림없다. 과연 그런 행동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주간을 기념하는 신앙의 행위일까 의심스럽다. 물론 필리핀은 카톨릭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개신교와는 다른 면이 많다. 아무리 그래도 십자가의 본질을 왜곡시키면 안 된다.

 

 

십자가는 역설적이고 모순된 개념이 많이 공존한다. 저주의 상징이지만 축복이 되었다. 부끄러움의 상징이지만 영광이 되었다. 죽음의 상징이지만 생명을 주었다. 형벌의 상징이지만 용서가 되었다. 심판의 상징이지만 사랑이 되었다. 혐오의 상징이지만 아름다움이 되었다. 아픔의 상징이지만 치유가 되었다. 슬픔의 상징이지만 기쁨이 되었다. 신음의 상징이지만 감사가 되었다. 속박의 상징이지만 자유가 되었다. 고난주간이 되면 금식이라도 하며 예수님의 고통에 참여해야 한다는 선입견내지 강박관념까지 보이는 모습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슬퍼하고 어둡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을 원하신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았기 때문이다. 항상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을 기뻐하며 살자. 담임목사.

 

 

受難の週を過ごした。出来ることならば、祈祷院で祈りを通してイエス様をより深く考えながら過ごしたかった。しかし、教会の働きが多くていけなかった。ちょうど、一週間の内神学校での組織神学の講義をした。意図的ではないが、組織神学の中でも「キリスト論」を教えながらイエス様に集中することが出来た。特に、イエス様の十字架と復活を調べながら多くの恵みを受けた。受難の週と神学校の講義が調和されたのである。また、早天祈祷会では毎日聖書を一章づつ読んでから講解説教をする。それが、ちょうど金曜日にマルコ14章を読む順となっていた。その内容がイエス様が受難された部分だった。わざわざ、合わせてもないのに、受難の週と聖書のみことばが繋がったのである。

 

 

 

数年前に、中高生たちとフィリピンに短期宣教に行ってきたことを思い出す。ちょうどその時が受難の週だったのを覚えている。当時フィリピンで見たテレビの映像の場面が頭に鮮明に残っているから。それは、受難週を迎えて十字架付けにされる体験をする人が写る画像だった。イエス様のように実際に十字架に付けられて血を流しながら苦しむ姿だった。その人は死ぬ前に十字架から下ろされるだろう。そういう行動がイエス様が喜ばれる受難週を記念する信仰の表しなのか疑い深い。もちろん、フィリピンはカトリック信仰を持った人々が大多数であるためにプロテスタントとは違うだろう。いくらそれでも十字架の本質を歪曲してはならない。

 

 

十字架は逆説的で矛盾となる概念が多く共存する。呪いの象徴なのに祝福となった。辱めの象徴なのに栄光となった。死の象徴なのに命となった。刑罰の象徴なのに赦しとなった。裁きの象徴なのに愛となった。嫌悪の象徴なのに美しくなった。痛みの象徴なのに癒しとなった。悲しみの象徴なのに喜びとなった。嘆きの象徴なのに感謝となった。束縛の象徴なのに自由となった。受難の週となれば断食でもしながらイエス様の苦しみの参加するべきだという先入観、あるいは強迫観念までがある。イエス様は私たちが受難の週だといい、悲しみながら暗く過ごすことではなくて、喜びながら楽しく過ごすことを願っていると確信する。なぜなら、イエス様が十字架で死なれたために私たちに命が与えられたからである。いつも十字架と復活の救いの恵みを喜びながら生きよう。魯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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