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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는 나이 드는 것이 뭔지 잘 몰랐다. 20대에는 나이 드는 것이 의식되어서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었고 그대로 되었다. 40대가 되고 난 어느 날 거울 앞에 낯선 남자가 서있었다. 나이 들어 변해버린 나 자신이었다. 50대가 되어서도 역시 거울 앞에 중년의 낯선 남자가 서있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뒤통수를 비추는 거울 앞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머리의 중간부분의 속살이 거울을 통해 내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속 알 머리가 빠진 것이었다. 어느새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아들 딸들이 결혼을 했다면 손자를 보고도 남을 때가 된 것이다.
가는 세월 누가 붙잡겠는가! 그런데 너무 빨리 간다. 그것도 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년이 지났고, 살펴보니 20년이 지난 것 같다. 앞으로 10년 뒤의 60대 중반이 된 내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보았다. 진짜 할아버지의 모습만 연상된다. 머리카락도 빠지고 시력도 치아도 안 좋아질 것이고, 이곳 저곳 아픈 곳만 많아진 연약한 육신이 될 것 같다. 20년 뒤의 70대 중반이 된 내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았다. 그때까지 살아있을는지 죽었을지 알 수가 없다.  살아있다 해도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이다. 물론 사람들은 지금은 100세 시대라며 장수의 날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100세를 살면 또 뭐하겠나 어차피 죽는 것을.
구약에 애굽의 바로왕과 야곱의 대화 중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다. 바로 왕이 야곱에게 연세를 물었을 때 한 말이다. 야곱은 자기 나이가 130세라고 하면서 부연적으로 인생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첫째는 얼마 못 된다 둘째는 나그네 길이다 셋째는 험악한 세월이다(창47:9). 우리 모두의 인생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 어떤 인생도 이 세가지를 피해가는 인생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늙는 것이 싫다고 해도 거부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드는 것을 즐기면 어떨까? 오해 말라. 육신적 쾌락을 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 새롭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육으로 살면 나이 드는 것이 아쉽고 슬플 것이다. 그러나 영으로 살면 나이 드는 것은 날로 새로운 성장이 된다. 그런 은혜와 복을 즐기자.

담임목사.

 

 

10代には年を取るのが何かよく分からなかった。20代には年を取るのが意識されて30歳になる前に結婚をしたかったし、その通りになった。40代になったある日、鏡の前に見慣れない男が立っていた。年を取って姿が変わった私だった。50代になったある日も鏡の前に立っている見慣れない男を見てびっくりした。急に年老いたと感じられた。そして何日か前のことである。鏡に普段見えなかった頭の後ろが見えたが、髪の毛が抜けていて肌が見えた。そこまでであ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からびっくりした。いつの間にかおじいさん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本当に息子や娘が結婚でもしていれば孫を見ることもありうる年齢となった。
流れる時間を誰が止めることが出来るだろう。ところがあまりにも早い。しかもあまり感じられない内に流れてしまう。知らぬ間に10年が過ぎて、気がつけば20年が過ぎてしまったようだ。これから10年先の60代になった自分の姿を想像してみた。本当のおじいさんの姿だけが思い浮かぶ。髪の毛も抜け、視力も弱り、足腰もよくない弱い肉体になっているに違いないだろう。20年の後の70代になっている自分の姿もさらに想像してみた。そのときまでに生きているかどうかも分からない。生きていても死を備えなければならない年である。人々は今は100歳時代だと言いながら長寿の老後を備えようとしている。しかし100歳を生きていて何になるだろう。どうせ死ぬのに。
旧約聖書にエジプトのパロ王とヤコブの会話の中で印象深い内容がある。パロ王がヤコブに年齢を尋ねたときのヤコブの答えである。ヤコブは自分の年は130歳であると言って、さらに付け加えて話す。それが人生に付いての説明のように見える。第一、短い。第二、旅人である。第三、険しい歳月である(創世記47:9)。私たちすべての人生を代弁するものである。どんな人生でもこの三つのことを避けて通ることは出来ない。いくら年を取るのが嫌だと言っても拒むことは出来ない。
 「避けられなければ、むしろ楽しめ」という言葉がある。それなら年老いることを楽しむのはどうだろう。誤解しないでほしい。肉体的な快楽を求めよと勧めているのではなく、霊的に新しくなることを経験するものである。肉で生きていけば、年老いることが残念で悲しくなるだけだろう。しかし霊で生きていけば、日々新しい成長に繋がる。その恵みと祝福を味わおう。

魯牧師。